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작년에 유가정책에 불만을 품고 대가를 경고한 미국에 경제 타격 맞대응을 위협한 정황이 뒤늦게 전해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게임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를 통해 유출된 미국 정부의 기밀문건에서 이런 내용을 찾았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가 문제의 발언을 한 시점은 작년 10월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의 원유 감산에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사적으로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더는 미국 행정부와 거래하지 않겠다"며 "미국이 큰 경제적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문건에 기재됐다.
WP는 이 같은 위협이 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미국 당국자들에게 전한 것인지, 전자 도감청에 포착된 것인지 불확실하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전통적 우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경색된 게 사실이었다.
그 저변에는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의 책임을 물어 사우디를 '국제 왕따'로 만들겠다던 바이든 대통령과 무함마드 왕세자의 불화가 지속되는 상황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에 손을 벌리는 처지가 됐다.
자국 내 인플레이션을 잡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제재 효과를 키우려고 사우디에 원유 증산을 요청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휘발유를 비롯한 소비재 가격이 급등해 여론 악화를 우려했다.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는 고유가 덕분에 서방제재의 타격을 완화하며 전비를 충당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사우디는 미국의 되풀이된 요청과 압박을 묵살했다.
오히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차원의 감산을 주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감산 결정을 중간선거 뒤로 미뤄달라는 요청을 묵살하고 '감산은 러시아 편들기'라는 미국 압박에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WP는 오랜 세월 석유와 안보를 맞바꿔온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에 긴장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동에서는 중국의 세력 확장, 산유국으로서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사우디의 경제체질 개선 등과 맞물려 기존 역학관계가 뒤틀리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한 대변인은 "사우디의 그런 위협을 모른다"며 "일반적으로 종종 그런 문건은 한순간을 다룬 단편에 불과하고 전체 그림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미국은 안전하고 번영하는 지역이라는 공통 비전과 상호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그 지역의 중요한 파트너인 사우디와 계속 공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공공연한 경고와 무함마드 왕세자의 비공식 위협은 8개월이 지난 현재 현실화하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 왕실과 냉랭해진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계속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난 6일 사우디를 찾아 무함마드 왕세자와 1시간40분 동안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예멘 내전, 인권, 수단 군벌분쟁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블링컨 장관은 방문 마지막 날인 8일 "우리는 현시점의 난제나 위기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공동의 미래를 위한 긍정적 비전을 제시할 양국 국민을 위한 진정한 진보를 함께 밀고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